2013년 10월 29일 화요일

언제오실까?? ∈무화과나무의 비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언제 오실까

“아빠, 언제 오세요?” 다섯 살배기 딸이 아빠를 기다린다. 
“엄마, 언제 오세요?” 중학생 아들이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린다. 
“아들아, 언제쯤 도착하냐?” 고향집에 계신 부모님이 자식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이처럼 시간과 서로 닿아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한 예언은 
재림그리스도의 오시는 시기임을 성경을 조금이라도 연구해보신 분은 알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의 예언을 이루고 오신
재림그리스도로 믿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만이 
무화과나무의 비유의 예언을 이루고 오신 유일하신 분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올바로 깨닫고 
하나님의교회에서 안상홍님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언제오실까?? ∈무화과나무의 비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3500년 전, 이집트에서 해방만을 꿈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메시아를 기다렸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출애굽기 3:7)


하지만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언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막연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들에게 
모세라는 선지자가 등장한 것은 430년 후의 일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재림 예수님을 기다린다. 
인류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재림 예수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성경은 재림 예수님께서 등장하는 시기에 대해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3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대화 중 하셨던 말씀이다. 
이 대화의 주제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다. 
지금 눈앞에 예수님을 두고 ‘주의 임하심’을 논한다는 것은 
또 다른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의 오실 시기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림 예수님께서 언제 오십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 올 것이다”라고 답하셨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는 과연 언제란 말인가. 

이 답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이 든다.
 먼저 무화과나무는 무엇이며 
또 하나는,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시기는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① 무화과나무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마가복음 11:12~14, 20~22)


이 말씀만 본다면 온유하다는 예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란 것은 무화과가 열매 맺을 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9월 중순이라야 사과를 수확할 수 있는데 
3월에 사과나무에 가서 사과를 따려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말라버리게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냥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또 하나 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3:6~9)


이 비유에서도 한 사람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다고 
일하는 사람에게 베어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래도 과원지기는 한 해만 더 두고 보자며 열심히 길러볼 테니 기회를 달라고 사정한다.
 이 두 말씀들은 무화과나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다. 
이제 이 말씀들에서 말하고 있는 무화과나무의 의미를 성경에서 알아보자.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이사야 5: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예레미야 24:5)


다시 말해 위에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는 바로 이스라엘 국가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나 
이스라엘은 오래토록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겼던 뿌리 깊은 종교관으로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3년 동안 와서 실과를 구했다’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소했던 말씀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처럼 저주를 받게 됐다. 
그 결과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해지기 전, 
잎사귀를 내기 전’인 말라버린 상태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누가복음 21:20~24)


AD 68년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네로 황제가 죽자 로마에서는 후계자를 놓고 
권력 투쟁이 벌어져 예루살렘 진압은 잠시 주춤했다. 
결국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로 돌아가 황제로 추대됐다. 
그사이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서둘러 예루살렘을 떠났다.


2년 후 AD 70년, 그의 아들 티투스가 유다의 군사작전권을 갖게 됐다. 
잘 훈련된 로마 군단을 이끌고 들어온 티투스는 
예루살렘 성 포위를 강화하고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해 갔다. 
결국 AD 70년 예루살렘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리라(누가복음 21:6)”는 성경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종말을 고하게 됐다.


이스라엘은 1900년이 넘는 세월을 유랑자의 신세로 지냈으며 
국민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나라 없는 설움 속에 살았다. 
그러나 분명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야 한다. 
그때 재림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예언이 있기에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의 독립이 있어야 함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언제오실까?? ∈무화과나무의 비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②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시기는 언제인가?


1860년 부다페스트에 테오도르 헤르츨이 태어났다. 
그의 등장은 이스라엘 독립의 작은 등불이었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에 자극을 받은 그는 1897년에 이르러 시온주의 총회를 열게 된다.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운동인 시오니즘은 전 세계 유대인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시온운동을 더욱 확고히 했고 
결국 1948년 5월 14일 금요일 오후 4시,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이스라엘 국가(國歌)인 '하티크바(희망)'가 불려진 후
 벤 구리온 수상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독립 헌장을 읽었다.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적이며 본질적인 권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독립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32)”는 말씀처럼 
이스라엘이 1900년의 혹독한 세월을 넘어 독립을 이루었다.


고목생화(枯木生花)의 기적은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시기를 말하고 있다. 
인류가 기다리는 재림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그때 등장하신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언제오실까?? ∈무화과나무의 비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1948년 그때, 
우리에게 영생의 방법인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분, 바로 안상홍님이시다. 

안상홍님께서는 1918년에 탄생하셔서, 
1948년 다윗왕의 예언에 따라 30세에 침례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새 언약 유월절을 가르쳐주신 재림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재림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다. 
언제 오실까 하늘만 바라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 예수님은 이미 오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셨다.








2013년 10월 19일 토요일

안상홍님≪≡≫구름타고∽♪♬Α하나님의교회Ω


안상홍님≪≡≫구름타고∽♪♬

어떻게 오실까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오류 중 하나가 
공관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구름 타고 오시리라’는 데 있다. 


안상홍님≪≡≫구름타고∽♪♬Α하나님의교회Ω



‘구름 타고 오시리라’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재림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 다니는 200만 성도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구름은 육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구름 타고 오시리라’는 이 말씀에 대해 
성경을 통해 실제 구름이 아닌 비유적인 구름으로서 
재림그리스도께서는 육체 곧 사람되어 오심을 뜻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구름 타고 오시리라’라는 예언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예언에 따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육체로 곧 사람되어 오신 재림그리스도이십니다
.
안상홍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안상홍님≪≡≫구름타고∽♪♬Α하나님의교회Ω


기성교단은 구름 타고 오시는 재림 예수님의 등장이 
곧 심판이라는 공식을 세워두고 아직도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재림 예수님의 등장이 이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21:27~28)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이 장면 어디에도 심판이라는 말씀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구원이 가까웠으니 구원받을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마태복음에서 살펴보자.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4:30~31)



마태복음에서는 재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 후 
천사들을 통해 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의 재림 예수님과 기성교단의 재림 예수님은 이리도 다를까. 
아무리 재림 예수님을 영접하고 곧바로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해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재림 예수님의 등장을 올바로 이해해야 
구원받는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8)



재림 예수님께서 오실 때 세상에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자들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림 예수님의 등장이 바로 심판으로 이어진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시는 이유가 심판이 아닌 
구원받을 백성들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또 다른 의문점이 든다. 
재림 예수님께서 타고 오리라 하신 ‘구름’은 어떤 구름인가. 
상층운에 속하는 권적운(양털 모양의 작은 덩어리 구름)인가, 
아니면 하층운에 속하는 난층운(먹구름)인가. 
지금 만약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면 
당신은 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재림 예수님께서 타고 오리라 하신 구름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아니다. 
그것은 2천 년 전에 오신 초림 예수님의 예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초림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기 약 600년 전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이렇게 예언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13~14)



다니엘은 예수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셔서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고 예언했다. 
이 예언이 과연 예수님과 부합하는지를 확인돼야 
예수님께서 타고 오신 그 구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예언 가운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은 인자는 과연 누구인지 
신약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18)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한복음 17:10)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누가복음 22:29)


다니엘의 예언 가운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다. 
그러니 하늘 구름을 타고 등장한 인자는 분명 예수님을 뜻한다. 


안상홍님≪≡≫구름타고∽♪♬Α하나님의교회Ω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과연 하늘 구름을 타고 오셨는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나셨다.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약속한 인자가 하늘 구름이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이는 재림 예수님의 등장도 이와 같은 이치다.


재림 예수님의 등장은 구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구름이 뜻하는 사람의 모습 즉, 육체를 입고 이 땅에 태어난다는 의미다. 
초림 예수님처럼 말이다. 
구름이 사람이라는 것은 성경 여러 곳에서 알려주고 있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유다서 1:12)


‘물 없는 구름’을 두고 자기 몸만 기르는 ‘거짓 목자’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갖고 있지 못하고, 
오직 자기 배만 채우기에 급급한 거짓 목자들을 두고 생명수가 없는 구름이라고 했다.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잠언 25:14)


‘거짓 자랑하는 자(者)’와 ‘비 없는 구름’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
 비는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령을 상징한다. 
이는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비 없는 구름’이라는 뜻이다.


위의 말씀을 살펴볼 때 성경의 ‘구름’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누가복음의 ‘구름 타고 오시리라’ 한 재림 예수님은 
분명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안상홍님≪≡≫구름타고∽♪♬
Α하나님의교회Ω


만약 당신이 어떤 지역에 여행을 갔다고 치자.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려 하며 갖은 모욕을 주고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면 
당신은 과연 그곳에 다시 가고 싶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셨다. 
초림 때 겪으신 고통을 뒤로하시고 다시금 이 땅에 오셨다. 
사라져버린 구원의 진리를 다시 알려주시고 
인류에게 믿음을 심어주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사람의 모습으로 말이다
(히브리서 9:28).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만 쳐다보고 있는 사이, 
재림 예수님께서는 벌써 한 아기, 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셨다.



 안상홍님≪≡≫구름타고∽♪♬Α하나님의교회Ω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예언대로 
구름으로 비유된 육체 곧 사람되어 오신 재림그리스도 이십니다!!!

2천년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 영접하지 못하고 배척했던 
유대인들의 죄악을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교회에 구름타고 오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을 꼭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다윗≡예수님≡안상홍님≫≫시온을 건설하다. ≪하나님의교회≫



시온을 건설하다.

30세에 왕위에 오른 다윗은 제일 먼저 시온성을 정복하고 시온을 건설했다.
30세에 영적 이스라엘 왕위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절기지키는 시온을 건설하셨다.
30세에 다윗 왕위의 예언에 따라 영적 기름부음인 침례를 받으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무너진 절기지키는 시온을 재건(rebuild)하셨다.

이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일까.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의 절기를 지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새 언약 절기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입니다.
천국을 꿈꾸는 당신이라면 천국으로 인도하는 새 언약의 절기를 지켜보세요..
새 언약의 절기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줍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꼭 지켜보세요^^


이스라엘의 다윗 왕과 2천 년 전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 
두 인물의 관계는 성경 곳곳에 예언과 성취로 나타나 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에스겔 37:24~25)

  사진출처[히스토리 채널 '사라진 세계']
다윗≡예수님≡안상홍님≫≫시온을 건설하다. ≪하나님의교회≫



에스겔 선지자는 다윗이 왕이 되리라고 예언했다. 
난해한 점은 이미 다윗 왕이 죽은 지 약 450년 후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를 고려해 볼 때 이 예언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실제 다윗 왕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성경학자들도 예수님께서 다윗의 예언을 이루셨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누가복음 1:31~32)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께서는 다윗 왕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실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 그의 생애에 
가장 기억할 만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무엘하 5:7~10)


30세에 왕위에 오른 다윗은 제일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시온성을 정복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오랫동안 정복하지 못했던 시온성이 다윗에 의해 정복되었다.

다윗의 이 역사를 또 다른 다윗인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루실까. 

예언상 다윗이 곧 예수님이기에 
다윗이 이룩한 시온성 건축 역사는 예수님께서도 반드시 이루셔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건축하실 시온성은 다윗이 세웠던 한낱 건축물이 아니었다.



다윗≡예수님≡안상홍님≫≫시온을 건설하다. 
≪하나님의교회≫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 33:20)


이사야 선지자는 시온을 두고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시온이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건축할 시온은 바로 이런 곳이다. 
다윗의 예언을 이루되, 무너져 없어질 건축물이 아닌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시온을 세우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절기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 시온이므로 
예수님께서는 시온을 세우기 앞서 먼저 하나님의 절기를 정립해주셨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절기에는 
제자들과 함께 지킨 유월절, 초막절이 있으며, 
사도들이 지킨 오순절에는 성령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주간절기인 안식일이 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2, 37)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실지로 시온성을 정복하고 수축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절기를 정립해주시며 보이지 않는 영적 시온성을 건설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시온의 절기들이 
사도시대 말경부터 차츰 변경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자 
사단 마귀는 급기야 하나님의 절기를 모두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다니엘 7:25)


다니엘 선지자는 사단 마귀에 의해 하나님의 진리가 무자비하게 짓밟힐 것을 예언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성도가 괴롭힘을 당하고,
 하나님의 때와 법인 절기와 계명들이 변개됐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시온성의 무너짐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시온성은 하나님의 절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 시온성이므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시온성도 없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잘 알고 있던 사단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시온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절기들을 변경시킨 것이다.


다윗≡예수님≡안상홍님≫≫시온을 건설하다. ≪하나님의교회≫


AD 321년에 토요일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고, 
AD 325년에는 유월절을 폐지, 
이후 태양신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교회로 들여오므로
하나님의 절기는 모두 사라졌다. 
하나님의 절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곧 시온이 황폐화됨을 의미한다.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이사야 51:3)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절기가 변경될 것을 예언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시온이 황폐할 것을 예언했다. 이는 같은 말씀이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살펴보면 시온이 다시 위로를 받을 것과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하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절기가 없으므로 절기를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도 없어 황폐했던 시온이, 
다시금 절기를 지키는 백성들의 감사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시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모여 절기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말일에 대한 예언 속에 시온을 언급했다.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미가 4:1~2)


말일(末日)은 곧 마지막 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많은 민족과 이방들이 
여호와의 산 곧 시온으로 몰려갈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셨던 시온은 사단에 의해 시련을 당하지만 
결국 다시금 세워지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예언이다.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시편 102:16~22)


하나님께서 시온을 건설하시리라는 이 말씀 가운데
 ‘건설’이 영어 성경에는 ‘rebuild’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는 ‘재건’을 의미한다. 
즉 이 시대 하나님께서 사단에 의해 무너졌던 시온을 
다시금 세워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온은 누가 세워주실까.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시편 87:5)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시온은 다윗이 세웠으나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절기 지키는 시온은 오직 하나님만이 세우실 수 있다.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시온, 사단 마귀에 의해 무너졌던 시온은 
오직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만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시온을 재건할까. 
이는 초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절기를 정립함으로 시온을 세우셨던 것처럼, 
재림 예수님께서도 사단에 의해 짓밟힌 
하나님의 절기를 재정립함으로 시온을 세워주신다. 
이는 시온이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윗≡예수님≡안상홍님≫≫시온을 건설하다. ≪하나님의교회≫





다윗≡예수님≡안상홍님≫≫시온을 건설하다.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절기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결코 무너졌던 시온이 재건될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절기를 회복해주심으로 시온을 재건해주신 
이 시대의 구원자는 안상홍님이시다.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께서는 
무너진 모든 절기를 바로 세우시고 
무너진 시온을 재건(rebuild)하신 지존자, 
곧 하나님이십니다.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 ∈하나님의교회 역사∋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하나님의교회 역사는 기독교회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기독교회사가 곧 하나님의교회 역사임을 
2000년 전 예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1~10)


기독교의 시작점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부터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다.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가 깊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기독교는 신흥종교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대인들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 ∈하나님의교회 역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형을 하루 앞둔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다.
 이날이 바로 우리들이 최후의 만찬으로 알고 있는 ‘유월절’이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 19~20)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유대인들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수장의 죽음으로 무리들은 당연히 흩어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게 했고 
결국 120명의 사도들은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졌다.


본격적인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AD 100년이 넘어서다. 

그전에는 House-church(가정예배)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수중에 있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던 다신교 국가로, 최고의 권위가 황제였다. 
로마 시민은 누구든 국가의 모든 일에 복종해야 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역시 국가에 충성했지만 한 가지,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눈엣가시였다.


더욱이 로마 제국은 국가 통합의 목적으로 
여러 신들과 함께 황제에게도 예배하는 종교가 성행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초대교회는 대체로 House-church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고린도전서 1:2)


로마의 탄압을 피해 가정으로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즉,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교회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재위 기간 54~68년)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년)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지하무덤)에까지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예배드렸던 장소, 카타콤.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 ∈하나님의교회 역사∋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갈레리우스는 
311년 임종 직전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다. 
기독교의 승리였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비로소 기독교는 347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 국교로 인정받았다. 
탄압의 세월을 보내고 찾아온 눈물 겨운 결실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이다.





이 무렵 하나님의교회 즉 기독교는 서서히 파벌이 생겼다.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교회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해도 된다는 로마교회였다. 
결국 로마교회는 인본주의라는 독단적인 길을 가게 됐다. 
반면 동아시아 교회들은 성경을 위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고수했다. 
두 지역 교회의 교리 논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됐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동아시아에 있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실행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모든 기독교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하도록 강요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빅터의 결정에 따랐지만 
동아시아 교회들은 모두 거부했다. 
동아시아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사도 빌립, 사도 요한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임 감독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다.
 두 교리 간의 역법(曆法) 차이로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교리의 이교도화가 가져온 산물이었다. 
이 기간에 급격하게 
로마교회의 교리는 변질됐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86년 십자가상을 도입했다.

교리의 변화와 함께 논쟁이 거세질 즈음 
군사적 약화와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서로마 제국으로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이동했다. 

4세기 말 훈족의 서진(西進)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민족은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 비록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로마교회는 건재했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뒤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인 
약 100년 동안 로마교회는 나름대로 살 방법을 모색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여러 미개한 부족들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로마교회와 손을 잡았다. 
그중 재빨리 로마교회로 개종한 프랑크왕국은 
처음부터 로마교회를 옹호하므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로마교회에 정면으로 반대하던 나라 중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는 
로마감독의 농간에 차례차례 멸망당하고 말았다.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교도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우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다.


로마교회의 위상은 이때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급기야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1년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천주교황의 탄생이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됐다. 
그 종착점은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 성으로 유배시킨 때까지다.

 이제 참다운 기독교인 하나님의교회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사라진 후 교회는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로마카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는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이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 
∈하나님의교회 역사∋


이처럼 천주교가 부패의 일로를 걷고 있을 무렵, 
독일의 광산 노동자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다.
 신학 교수를 거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다.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티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티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라며 반박문을 보내고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긴 서한을 내걸었다. 
비로소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 아울러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아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 하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사도들도 다녔으며 그의 제자들도 죽음을 불사하고 지켰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믿음을 지키는 
그 하나님의교회가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복권됐다.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 ∈하나님의교회 역사∋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



인류가 바라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2000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교회가 수복된 것이다.
 2000년의 세월 속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며 사라지고 있다. 



종교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를 만나고 싶다면 
처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했던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되므로 종교인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정통기독교가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누구일까 ¿¿ Α아버지하나님Ω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첫 사람, 아담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일까.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영혼을 그 속에 넣자 비로소 
아담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누구일까 ¿¿ Α아버지하나님Ω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누구일까 ¿¿ Α아버지하나님Ω


이렇게 창조된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했다.
후에 아담은 930세라는 나이로 죽기까지 가인과 아벨 등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구약성경 창세기는 전하고 있다. 
이것이 아담의 일생이다.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누구일까 ¿¿ Α아버지하나님Ω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아담을 두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창조된 아담은 분명 한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있고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씀 가운데 두 아담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며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살려주는 영’이다.


 첫 사람 아담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그 속에 영혼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시킨 아담이다.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누구일까 ¿¿ Α아버지하나님Ω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누구일까??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살려주는 영’이라는 점이다.

 이로 보건대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주기 위해 오시는 
구원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아담을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실 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실 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오실 자’를 표상하는 아담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인 
재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살려주실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인 재림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다. 

과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신단 말인가.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로, 유월절의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이다.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의 예언 그대로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재림 예수님은 과연 누구일까.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누구일까 ¿¿
 Α아버지하나님Ω